소설가 송하훈의 장편소설 ‘박치기왕 김일’(2)

한국자치신문 | 기사입력 2025/09/26 [15:49]

소설가 송하훈의 장편소설 ‘박치기왕 김일’(2)

한국자치신문 | 입력 : 2025/09/26 [15:49]

한국자치신문이 세계적인 영웅 제일교포 역도산의 수제자 고흥군민의 영웅이자 대한민국의 영웅인 박치기왕 김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을 연재한다. 

넘쳐나는 기사들로 도저히 할애 할수 없는 지면을 더군다나 안수원작가의 장편소설 배달의 연재를 중단하면서까지 송하훈 작가의 청을 수락하기로 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제1장 일본행 ②

“그런데 대체 어떤 분입니까?”

김일은 역도산이란 사람의 말을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양 지껄여대는 사내의 신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만나려면 장소 또한 미리 알아야 될 게 아니겠는가?

“나야 바다에서 사는 사람이지. 그것도 현해탄이 내 집이라구.”

아니, 바다가 집이라니? 게다가 현해탄이라니? 김일은 일순 웃음이 픽 나왔다.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이 사내의 언변에 재미가 있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바다가 집이라면 고기 잡는 어부 말고는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현해탄이 집이라고?

바다는 여전히 어선들이 오가고 있었고 갈매기 역시 날갯짓을 부지런히 하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문득 지난 해 여름, 여수 보리암에서 인상 깊게 만났던 한 젊은이가 떠올랐다. 여수에 온 김에 향일암엘 들른 것인데 그 젊은이와 조우했던 것이다. 그는 머리빡을 빡빡 밀었으나 수염은 영감처럼 길게 늘어뜨린 특이한 모습이었다. 옷차림은 잿빛 승복이 아닌 검정물을 들인 한복차림이었다. 그런 젊은이가 향일암엘 가려면 좁은 바위틈으로 생긴 해탈문을 지나야 하는데, 그 입구에서 김일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었다.

-젊은 친구! 몸이 제법 좋으시군.

-감사합니다.

김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불심이 필요해서 향일암을 찾으셨는가?

같은 또래처럼 보이는데도 숫제 반말이었다. 마치 자기가 서너 살이라도 더 먹은 척 하대를 하는 것이어서 김일은 부아가 약간 끓어올랐지만 지그시 눌렀다.

-여수에 온 김에 잠깐…….

-불심이야 여기 향일암 아니고도 천지에 불심이 널려 있는데 말이지. 아니, 전 우주가 다 불심이 아니겠는가.

김일은 젊은이가 도사(道士) 흉내를 그럴싸하게 내는 것에 어리둥절해졌다. 무엇보다도 길게 늘어뜨린 수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김일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 지리산에서 왔지.

지리산? 지리산이라면 구례‧하동‧산청‧함양‧남원의 5개 군에 속에 있고, 주변이 800여 리에 이르며 천 미터급 영봉만도 40개가 넘는 명산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지리산이 모두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그는 아상(我相)에 잔뜩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때 좁은 바위틈에서 스님 한 사람이 뛰어오더니 죽비로 그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갈기며 소리쳤다.

-죽어서 소나 될 놈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싸돌아댕기기만 하느냐?

스님의 일갈에 그는 뒷도 돌아보지 않고 돌계단을 두 개씩 뛰어 내리며 잽싸게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땡중도 속인도 아닌 그는 외모를 그렇게 치장하고 다니며 원숭이 흉내나 내는 철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일은 그때 일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으며 사내 또한 그 철없는 사람은 아닌가 일순 의구심이 들었다.

“현해탄이라고 하면 일본을 왔다 갔다 하십니까?”

“제대로 알아맞히는군. 그래 일본 혼슈(本州) 야마구치(山口)현에 위치한 시모노세키(下關)항을 오고가는 여수호 화물선 선장이지.”

“여수항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입니까?”

“150여 마일 떨어진 곳이고 먼 뱃길이기 때문에 20시간 정도 하얀 파도를 가르며 가야만 돼.”

순간, 김일은 화물선 선장이라는 사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일본은 부러움의 땅이요, 동경의 땅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곳을 안방 드나들 듯 다니고 있다니.

김일은 여수항에서 시모노세키항으로 떠났다가 언제 되돌아오는 지 날자와 시간을 물어본 후 헤어졌다. 화물선 선장의 이름은 김두옥이었고 파는 달랐지만 같은 성씨를 지녔다는 점에서 반가움까지 느껴졌다. 그는 흑백으로 된 사진 한 장을 불숙 건네주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 역도산이었다. 그러나 그 사진만으로는 역도산이 누구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사흘 뒤, 김일은 여수항에서 그 김 선장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저 배로 가자구.”

김 선장은 거대한 목선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여수호’라고 박혀진 배가 옆구리에 헌 타이어를 주렁주렁 매단 채 부두에 거대한 목이 묶여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김 선장은 역도산에 대해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갑판장을 소개해 그로 하여금 역도산 이야기를 하라고 시킬 참이었다.

선원실은 의외로 깨끗했다. 이부자리며 식기 등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고 심지어는 재떨이까지 말끔히 놓여 있었다. 서너 평 됨직한 선원실에는 세 사람의 선원이 둥글게 앉아 뭔가 입에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얼른 들어보니 역도산에 관한 이야기였다.

“잠깐! 동생들한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함께 왔네.”

김 선장이 김일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눈썹이 유난히 짙은 선원이 물었다.

“누군디요?”

“보면 모르겠나. 장사님 아닌감?”

사내는 장사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김일은 머쓱해서 엉거주춤 서 있으려니 다시 눈썹 짙은 선원이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글고 봉께 장사님 타입이시구마. 장사님. 일루 앉으시구랴.”

김일은 고개를 두어 번 숙여보이고는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어이, 기관장! 이 젊은 친구에게 역도산 얘기를 좀 들려주게나. 아무래도 나보다는 기관장이 젤 잘할 것 같아서…….”

눈썹 짙은 사내는 김 선장이 지목한 기관장이었다. 

“선장님께서 일부러 사람을 모셔왔으니까 당연 해야지요.”

기관장이란 사내가 이윽고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더니 역도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시작했다.

“그러니까 작년 일이었어요. 1952년 역도산은 미국 순회 경기를 하였는데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둬버렸응께 말이여. 총 200여 회를 출전했는데 딱 다섯 번만 졌다고 일본에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일본사람들은 미국이라고 하면 원폭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제. 원폭이 뭐냐고 설명을 조깐 해보면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상공에 떨어졌제. 미군의 폭격기 B-29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을 때 주민들은 그저 정찰을 하나보다 생각했어요. 그 폭격기에 원자폭탄이 실려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던 게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니까 자그마치 약 14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흘 뒤 나가사키에 또 원자폭탄이 떨어지니까 모두 22만 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거야. 일본이 이렇듯 쑥밭이 되고나니까 무조건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지. 일본사람들은 비록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항상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콧대 높은 미국놈들을 역도산이 때려눕히는 장면을 보니까 속이 다 시원했것제. 일본은 당시 패전국이 되어 미국인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지만, 역도산이 미국에서 체격이 월등하게 큰 외국인 레슬러를 때려눕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었고, 국민감정을 대변해 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당께.”

기관장이 물 한 컵을 마시고 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장면들을 보기 위해 일본 열도는 활력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텔레비전이 불티나 듯 팔리기 시작했어요. 일본 땅에서 영웅이 되어버린 역도산. 얼마나 유명했느냐 하면 천황 다음으로 유명인사가 된 것이여. 참말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이제. 그러자 역도산에게는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이때 유도의 귀신이라고 불리던 기무라 마사히코가 역도산에게 도전장을 냈어요. 그는 자기 고향인 구마모토에 ‘국제프로레슬링단’을 세우고 역도산에게 도전장을 내면서 큰소리를 쳤지. ‘역도산의 프로레슬링은 쇼이기 때문에 진검승부라면 내가 이길 수 있다!’ 이렇게 큰소릴 치면서 역도산의 호적상 비밀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어. 역도산의 호적상 비밀이 뭣인고 하니 조선인 출신이라는 것이었어,”

이때 김일은 헉, 하고 숨이 넘어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조선인이라니…. 그런 역도산이 조선 사람이라니.)

“정말인가요? 역도산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김일은 뛰는 가슴을 억누른 채 간신히 물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할까봐? 역도산은 분명 조선 사람이지. 암튼 역도산은 1954년 12월 20일. 연말 대회를 갖기로 했어요. 역도산 대 기무라 전 이외에도 두 사람의 제자 4명씩을 출전시키로 했는데, 이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주도권을 국민 앞에 겨루는 대회였지요. 이 경기는 1억 인의 일본 국민들이 NHK 텔레비전과 라디오 생중계로 지켜봤제. 이때 경기의 상금은 105만엔의 상금이 우승자에게 주어졌는데, 패자는 고작 45만엔의 대전료 뿐이었지. 그런데 그날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봤는데 말이여. 경기가 시작되고 한참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기무라가 먼저 왼발로 선제공격을 하더라구.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기무라가 역도산의 중요부위를 강타했었는가 보더라구. 화가 잔뜩 난 역도산이 기무라에게 가라테촙으로 무차별 난타를 하였고, 기무라가 쓰러지자 차고 때리기를 40여 초 가량 계속 하였는데 일어나지를 못했지. 심판의 카운트가 끝났는데도 말이지. 15분 만에 경기가 끝나자 기무라는 병원으로 실려 갔고 역도산은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게 된 거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맨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몸을 꺾어서 내던지고 하는 것이 믿어지질 않네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는 모르겠지만 사각의 링에서 경기를 한다는 게 얼른 이해가 되질 않구만요.”

김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관장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게 레슬링이라는 거지. 그런데 댁도 씨름께나 한 것 같은데 역도산도 애초에는 씨름선수였다더군요.”

“씨름선수요?”

김일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씨름선수였던 역도산이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레슬링을 잘 하다니…….

“역도산의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이고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큰형 항락(恒洛)은 태어날 때부터 체격과 힘이 빼어난 장사였는데, 함경도 일대에서 씨름꾼으로 이름을 떨쳤어. 거기에서도 명절날이면, 특히 단오절 풍년을 기원하는 씨름대회가 열리곤 했는데 큰형 향락이 우승을 거둬 황소 두 마리를 탔어. 그런데 그 대회에서 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큰형이 아니라 신락이었지. 역도산 이름이 그때는 신락이라고 했지. 이제 15세 소년이 3위를 차지했으니까 사람들이 놀랄만도 했겠지요. 그때 이 씨름대회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사업가 모모타란 사람이었어. 그는 일본씨름 스모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 동향 출신 스모선수 후원회 간사를 맡고 있었지. 겨우 15세 나이의 소년이 하는 씨름경기를 보니까 나중 큰 인물이 되겠다 싶어 신락의 집으로 찾아가 스모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지. 그러나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어. 가정형편이 용납을 못한 게지. 신락은 2년이 흐른 뒤 집안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모타의 권유로 현해탄을 건너간 거였어. 일본말도 서툴렀고 조선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멸시와 차별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는 오직 튼튼한 몸 하나로 버텼다더군.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했느냐 하면 실전 이상으로 스모 연습을 하였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도장 내의 후배들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두려워서 떨 정도였다고 해요. 그 후 역도산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두 달이 지나서 스모를 포기하고 이듬해 1951년 2월 일본국적을 얻게 되었지. 일본국적을 얻게 된 역도산은 다시 스모계를 기웃거렸으나 불발이 되자 탕아가 되어 길거리를 헤매면서 쌈질이나 하고 다녔어. 그러다가 그해 어느 날, 역도산은 덩치가 좋은 미국인에게 시비를 걸어 주먹을 날렸으나 오히려 야무지게 당하고 말았지. 나중 알고 봤더니 그 미국인은 사카다 해러드라는 프로레슬러였어요. 그러니 당연히 역도산이 얻어터질 수밖에. 그는 일본계 2세 미국인이었는데, 1948년 런던 올림픽 때 미국 역도선수로 출전한 바 있었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였으니 대단한 프로레슬러라고 봐야겠지. 그런데 사카다 해러드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어. 그 선수는 역도산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도미(渡美) 수련을 준비했으니까. 그러나 역도산은 다리가 굵으면서도 짧아서 레슬링에서 발기술을 쓸 수가 없었는데, 기껏 상대 선수의 하반신이나 노릴 정도였으므로 스모 선수 때 하던 하리테(손바닥으로 얼굴 치기)를 발전시킨 수도(手刀 ‧ 가라테촙)를 가르쳤지. 이때 역도산은 하루 5천 번을 치라고 하면 1만 번을 연습했다더군. 지독스럽게 연습을 한 게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역도산은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 영웅이 된 거지요.”

기관장은 숨도 쉬지 않고 역도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김일은 질끈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겨진 것인데, 아 한 번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슨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유명하다는 역도산 선생님의 모습을 좀 볼 수는 없을까요? 제겐 명함판 사진 밖에 없어서…….”

이때 잠자코 기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김 선장이 나섰다. 

“아암, 볼 수 있지. 일본 잡지에 역도산이 실려 있더군. 아주 화려하게 말이지.”

“그럼 꼭 잡지를 구해다 주십시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다시 일본에 가면 내 구해다 주지. 마음 푹 놓으셔. 까짓거 역도산 나온 잡지 하나 못 구할까 봐. 일주일  정도 뒤에 다시 여수항으로 오게 될 테니까 그 때 만나자구. 내가 선주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도착시간에 맞춰 날 만나러 오라구.”

김 선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김일은 이제 막 도착한 무역선을 향해 걸어 나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선장이 갑판에서 김일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댔다. 그는  약속대로 분명 선물을 가지고 온 게 틀림없어 보였다. 

선장이 가방 하나를  갑판에서 층층다리를 타고 바지선 위로 쪼르르 내려오더니 김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며칠만에 얼굴을 보게 되는군.”

“그런가 싶네요.”

“ 한 번씩 배를 몰고 시모노세키항을 다녀오면 내 몸이 배에 있는지 육지에 있는지 분간이 안 돼더라구.”

선장은 김일과 악수를 나눈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많이 오가고 했을텐데도 아직 그런가 보네요.”

“그나저나 뱃사람들하고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우리 장사님을 만났으니 함께 식당으로 가더라고.”

선장은 여러 차례 만났는데도 김일을 장사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는 갑판에서 층층다리를 타고 내려오더니 잡지 한 권을 불쑥 내보였다. 잡지 표지에는 <역도산>이란 큼직한 글씨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 사람이 역도산이지.”

김일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의 몸은 하나의 강철 덩어리였다. 불끈불끈 솟은 근육이며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탄력 넘치는 몸이었다. 사진 속 역도산은 검은 타이츠를 입고 있었는데, 팔짱을 끼고 상대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몸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아아!”

어느 틈에 김일은 사지의 맥이 깡그리 풀어지면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서 머리가 휘잉 도는 것 같았다. 

“어떠신가, 역도산 영웅의 모습이…….”

그는 어칠비칠하는 김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했지만 전혀 그의 말이 귀에 돌리지 않았고 잡지의 표지 사진만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잡지에는 역도산의 화려란 플레이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는데, 보디슬램이나 해머던지기, 그리고 당수 등 씨름과는 관련 없는 기술을 구사하는 것들까지 특집처럼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제대로 역도산의 모습을 보게 된 것 아닌가.”

“그저 놀랍기만 하네요.”

김일이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 김 선장은 얼른 손을 잡아 일으키며 크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술집에 가서 한 잔 하자구.”

그가 김일을 이끌고 제법 그럴 듯한 횟집으로 안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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